고릴라는 통화중 Bear It and Grin

.“곰 세 마리가 한 집에 있어/ 아빠 곰, 엄마 곰, 애기 곰/ 아빠 곰은 뚱뚱해, 엄마 곰은 날씬해/ ...” 곰에 대한 우리의 동화적 상상력은 아이들의 노래에서처럼 가부장적인 가족구조를 재생산하는 수준이다. 혹은 월트디즈니 만화 <곰돌이 푸>에서처럼 귀엽고 순한 동물로 어린이들의 친구라는 이미지를 갖는다.
<고릴라는 통화중>은 어린 곰돌이가 청년 곰돌이로 성장한 버전이다. 북극곰은 열대지방의 고릴라에게 전화를 건다. 북극에는 식량이 부족하니 바나나를 보내달라는 것. 고릴라는 곰의 요청에 흔쾌히 답하고 대신 더위를 식히기 위해 이글루를 지어 보내달라고 한다. 그들은 성실하게 약속을 이행하지만 고릴라에게 운송된 이글루는 이미 녹아버리고 곰에게 운송된 바나나는 딱딱하게 얼어있다. 우리는 그들에게 “Bear it and Grin, 그것(더위 혹은 배고픔)을 참아내고 한번 히죽 웃어봐”. 아니면 “Grin and Bear it(사전상의 뜻: 쓴웃음을 지으며 참다), 좀 열받아도 웃으려고 애써봐”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핀란드에서 날아온 애니메이션 <고릴라는 통화중 Bear it and Grin>은 곰돌이에 대한 기존의 상상력을 보다 현실화하고 했다. 의인화된 역할설정과 인형(puppet) 애니메이션의 사실성은 그러한 노력을 보여준다. 그리고 <고릴라는 통화중>은 연출자와 제작자가 스스로 밝히고 있듯 어린이와 가족을 대상으로 설정하여 그에 맞게 노래와 가사를 첨가한 한 편의 뮤직비디오로 만들어졌다.
올 여름에도 월트디즈니는 어김없이 자본과 테크놀로지로 화려하게 치장한 셀 애니메이션을 들고 우리를 찾아온다. <고릴라는 통화중>은 그것만큼 화려하진 않지만 월트디즈니에 길들여진 우리의 상상력에 소박한 새로움을 전해줄 수 있을 것이다.
(1999년 제3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박지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