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도다리 I Came from Busan

6.6/10
共14評論
時長   83분
語言   한국어
地區   한국
演員   박하선   김정태   허린   김민재   이창민   박성진   권영래  
台灣上映   07月01日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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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도다리劇情

영도다리 I Came from Busan,은 2010에 발표 된 한국 2010 드라마 .01 개봉 영화입니다,영화는 전수일가 지배하고 있습니다,박하선,김정태,허린 및 기타 주요 배우,한국에서 2010년07월01일에 출시되었습니다.

“19세 소녀, 나에게도 있을 '희망'을 찾아 떠난다.”

원치 않은 임신을 하며 출산과 동시에 입양기관에 아이를 넘기게 된 19살의 인화(박하선). 그녀는 다시금 평범한 일상을 꿈꾸려 하지만, 출산 후 이어지는 자연스러운 몸의 변화를 느끼며 모질게 떠나 보낸 자신의 아이를 그리워한다. 결국, 인화는 아이를 직접 찾아 나서기로 결심한다.

19세 인화는 임신 중이다. 어느 날 진통을 느끼고 영도다리 위에서 쓰러진다. 고통스럽게 아기를 낳은 후 친구인 상미가 건넨 아기탯줄도 무심히 버린 채 인화는 회복 실로 찾아온 입양직원이 건 낸 입양동의서에 지장을 찍는다. 병원에서 퇴원을 한 인화는 상미, 그리고 상미의 남자친구인 우찬과 놀며 다시 일상생활로 돌아오지만 다시 일자리를 찾는 것이 쉽지 만은 않다. 그러면서 인화는 자신의 몸의 변화를 느끼고 아기를 낳은 후 생긴 수술자국에 아기 생각을 조금씩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런 생활 속에서 인화를 둘러싼 영도의 여러 가지 상황들은 소리 없는 폭력으로 인화를 감싼다. 어느 날, 스쿠버가 바다에서 건진 그물더미에 아기신발을 본 인화는 집으로 와 상미의 핸드폰에 찍힌 아기사진을 보게 되고 불현듯 자신의 아기를 다시 찾아야겠다는 생각에 무작정 입양센터로 찾아간다. 인화는 자신에게 입양동의서를 받아간 직원을 발견하고 자신의 아기를 돌려달라 한다. 아기를 찾을 수 없다는 입양직원의 말에도 인화는 개의치 않으며 계속해서 입양센터를 찾아간다. 그러는 동안 인화는 엄마와 헤어지게 되는 꿈을 꾸게 되고 상미도 일본으로 떠나게 된다. 이런 환경들은 인화에게 아기를 찾고 싶다는 생각을 더 크게 만들고 인화 또한 입양직원에게 강하게 아기를 돌려달라고 한다. 처음엔 공손한 태도로 인화를 대하지만 끊임없이 입양센터로 찾아와 아기를 돌려달라는 인화에게 차츰 화가 난 태도를 보이는 입양센터의 직원. 결국, 그는 인화에게 서슴없이 욕을 하며 머리를 때리고 인화를 무시한 채 돌아서자 인화는 빈 맥주병을 집어 들고 직원의 뒤통수를 때리게 된다. 황당한 표정의 직원에게 인화는 울먹거리며 자신의 아기가 어디 있냐고 물어본다. 어느 날, 인화는 짐을 싸고 여권을 들고 방문을 나서다 우찬을 마주치게 된다. 상미의 안부를 묻는 우찬에게 인화는 모른다고 대답하자 갑자기 인화를 때리는 우찬. 인화는 방에 쓰러지고 정신을 잃는다.

눈이 덮인 프랑스 북녘마을의 모습이 기차 차창 밖으로 보여지고 인화의 얼굴이 창문으로 반사되어 보인다. 한 마을어귀에 들어선 인화는 주소를 물어 어느 집 앞에 다다른다. 초인종을 누르자 프랑스여인이 나와 인화에게 인사를 한다. 집 안에선 아기울음소리가 들리고 인화를 쳐다보던 프랑스여인은 그제야 누군지 알겠다는 눈빛으로 인화를 바라본다. 그런 프랑스여인 앞에 선 인화는 울먹인 채 말을 잇지 못한다. ‘I……came…….I………came………’

Special Tip : 희망으로 가는 길 ‘영도다리’

부산의 대표적 상징, 영도다리는 6.25 전쟁의 이산가족들이 재회를 기다리던 역사적인 공간으로 상실의 아픔을 의미하는 영화 속 장소. 인화가 잃어버린 아기를 다시 찾으러 가는 여정의 중요한 배경이 된다.

[ Prologue ]

'상실' 그리고 ‘이 시대의 희망'을 그리는 전수일 감독의 7번째 도발!!

스페인 산세바스찬국제영화제

스페인 라스팔마스국제영화제

이탈리아 페사로국제영화제

서울국제가족영상축제

서울독립영화제

연출의도

우리는 매일 방송을 통해서 어렸을 때 해외로 입양된 한국인들이 생부모를 찾는 모습을 접한다. 지금도 해마다 해외로 입양되는 아이의 숫자는 2,000명을 넘는다. 이들의 대부분은 미성년자인 미혼모에 의해서 낳아진 아이들이다. 아이를 출산한 미혼모들은 경제적 어려움, 학업, 주변의 시선, 미흡한 복지정책 등으로 인해 대부분 양육을 포기하고 입양을 선택한다. 최근 미혼모가 자신의 호적에 아동을 입적시킬 수 있도록 법이 개정된 후, 혼인 여부에 관계없이 스스로 아이를 양육하고자 하는 미혼모가 증가하고 있다.

이 영화는 미혼모 인화가 아이를 입양기관에 맡긴 후, 산후에 느끼는 상실감으로 인해 다시 아이를 찾으려는 과정을 통해, 결국 원조교재로 인한 출산 후 찾아오는 상실감과 아픔을 겪으며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찾는 여정을 보여주고자 한다. 인화는 퇴원 후, 정상적인 생활을 시작하지만, 배에 남아있는 수술 자국, 우연히 발견한 어린 아이 신발, 어렸을 때 강제로 고아원에 맡겨진 기억 등은 그녀로 하여금 강한 상실감을 불러일으켜 자신의 아이를 찾게 만든다.

인화라는 10대 소녀의 출산 전 후를 통해, 영화는 원조교재로 인한 청소년 성매매와 10대들의 성 문화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자 한다. 특히 10대들의 원조교재는 오늘날 성윤리의 붕괴실태를 여실히 보여주는 우리사회의 대표적인 청소년 문제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우리 주위에서 매일 접하는 10대들의 폭력은 영화에서 인화라는 소녀의 시선을 통해 무방비 상태로 사각지대에 놓인 현 사회의 모습을 반영해 주고 있으며, 노숙자가 된 실직자 아빠와 아들을 통해 현 시대의 사회문제를 거론해본다.

영화에서 ‘영도다리’ 라는 공간은 6.25 전쟁의 이산가족들이 만남을 기다리던 역사적인 공간이기도 하며 상실의 아픔을 의미하는 곳이기도 하다. 또한 인화가 입양기관에 아기를 다시 찾으러가는 여정 중의 한 배경이 된다.

[ Focus On ]

Made by 전수일, Made in 부산!

부산항의 이국적 풍광, 그리고 전수일 감독 만의 독특한 캐릭터와 이야기가 만나 또 하나의 도발적인 협주곡을 이룬다. 공개 이전부터 유수의 국제영화제로부터 러브 콜을 받고 있는 영화 는 전수일 감독이 직접 각본을 쓰고 연출한 7번째 장편.

설경구, 조재현 이을 차세대 주자, 신예 '박하선'과 '김정태'!

전수일 감독을 거쳐간 대표적 배우들 최민식, 설경구, 조재현, 정보석, 안길강 그리고 추상미. 인기드라마 '동이'에서 신예답지 않은 폭발적 연기를 선보이고 있는 '박하선'과 영화와 드라마를 넘나들며 신뢰감을 주고 있는 '김정태'가 만난 영화의 클라이막스는 놓치면 후회할 '연기력의 결정판'.

희망으로 가는 길 '영도다리'!

부산의 대표적 상징, 영도다리는 6.25 전쟁의 이산가족들이 재회를 기다리던 역사적인 공간으로 상실의 아픔을 의미하는 영화 속 장소. 인화가 잃어버린 아기를 다시 찾으러 가는 여정의 중요한 배경이 된다.

[ Production Note ]

1. 감독의 아픈 기억이 스크린 위에 재구성되다. 과거 20년 전 프랑스 유학 길에 오르며 감독은 두 살 난 입양아를 에스코트하여 프랑스 양부모에게 인계할 때 아이가 떨어지지 않으려고 감독의 손을 꽉 잡았던 아픈 기억을 영화 모티브로 삼는다. 누구의 아이였을까? 그는 그 동안 어떻게 살아왔을까? 그는 지금 자신의 생부모를 찾아 올 것인가? 등 등의 궁금증으로 이 영화의 제작이 시작된다.

해외 입양 인들의 부모 찾기는 매일 신문,방송을 통해 접하는 일상사가 되어버렸고, 오늘날에도 매해 2,000여명 이상의 아이들이 해외로 입양되는 현실을 우리는 바라보기만 할 뿐이다.

이 영화는 성인이 된 해외 입양 인이 아닌 10대 미혼모가 출산 후 아기를 입양 보내는 이야기로 구성된다.

2. 소녀의 심장은 아기를 기억한다.

자신의 뱃속에 10개월간 살다간 아기를 미혼모 소녀의 심장은 기억한다.

소녀의 몸에 남아있는 배의 수술자국과 젖앓이는 아기를 잃었다는 상실감을 강하게 느끼게 한다. 또 어렸을 때 고아원에 강제적으로 맡겨졌던 소녀의 기억은 또 다시 아기가 자신과 같은 전처를 밟게 하고 싶지 않다.

소녀의 심장은 다시 아기를 찾아오라고 말한다.

3. 영도다리에서 외치다.

10대 소녀 인화는 영도다리 밑에 산다. 우리는 어렸을 적에 영도다리 밑에서 주어온 아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서럽게 울던 기억이 있다. 영도다리는 6.25 동란 때 이산가족이 만나는 우리나라의 역사적인 공간이기도 하며, 다리 난간 위에 비친 초승달을 보며 하염없는 망향의 눈물을 쏟았던 곳이라고 한다.

진통을 느끼며 쓰러져 병원으로 데려간 장소도 영도다리이며, 아기를 입양 보내고 다시 아기를 찾겠다고 마음 먹은 곳도 영도다리 밑에서다. 영도다리는 소녀와 잃어버린 아기를 연결시켜주는 공간이다.

[ 제작일지 ]

김성태 촬영감독의 제작일지

2008년도 여름 어느 날, 이야기의 시작

해발 4000미터의 히말라야의 촬영으로 소진된 체력을 보충하면서 소일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부산에 계시는 전수일 감독님께서 서울에 오셨다. 부산에서 ‘히말라야’의 길고 힘든 후반작업을 끝내신 상태였고 많이 지친 모습의 감독님은 또 다른 힘든 작업을 준비하시고 계셨다. 오래 전 생각해 두었던 입양에 관한 이야기를 하시고 싶어 하셨다. 입양을 간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입양을 보내야 하는 이들의 이야기였다.

그 해 여름 감독님과 함께 배낭을 메고 유럽으로 떠났다. 프랑스에서 내려 기차를 타고 북으로 북으로 올라갔다. 북유럽은 입양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하는 나라들이 있는 곳이다. 우리는 그곳 현지 입양된 사람들의 모습과 헌팅을 목적으로 길고 지루한 여행을 경험하게 되었고 감독님은 여행을 통해 영도다리의 새로운 시나리오를 구상하셨다.

여행 후 감독님은 적은 예산이지만 ‘영도다리’를 찍고 싶다고 하셨고 그렇게 실행에 옮기셨다. 역시 전수일 감독님의 추진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독립 영화의 힘은 스텝에서 나온다.

스텝은 최소한으로 꾸려졌다.

영화는 누구의 한 사람의 능력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스텝의 능력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그 구성원이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영화를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들로 스텝을 구성했다. 영화를 7편 이상 만들면서 영화화가 좋아지는 것은 이런 친구들이 있어서다. 물론 능력도 열정만큼 많은 친구들이다. 정말 고마운 친구들이다.

발 품이 만들어낸 미장센

저예산 영화에서는 시나리오에 적당한 장소 헌팅이 정말 중요하다. 배우의 성격과 사건의 상황을 말해줄 수 있는 공간은 미술 세팅과 제작일정에 많은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영도다리’는 시나리오 단계에서 감독님은 영도 구석구석을 돌며 시나리오에 적당한 공간을 찾으셨다.

고집

저예산 영화에서는 촬영장비와 조명 장비를 렌탈이 많이 부담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많은 저예산 영화들이 가격이 비싼 필름 카메라 대신 HD를 카메라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 ‘영도다리’도 촬영 전 카메라 종류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스텝들과 나누었고 이야기 중심보다 이미지 중심으로 영화를 만드시는 감독님의 방식은 아날로그 방식인 필름이 좋겠다는 의견을 종합해 힘들어도 고집을 부려 필름으로 촬영하기로 했다. 지금 생각하면 좋은 방법을 선택했다고 생각된다. 우리가 원하는 바라는 가치는 단순한 가격으로 따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고집이 독립영화를 지금껏 만들어온 힘이 아닐까? 영화 ‘영도다리’는 작은 영화로 시작되었다.

2009년 2월 22일

드디어 첫 촬영이 주유소 사무실에서 시작되었다. 적은 예산을 가지고 진행되는 작업이라 인공조명 보다는 자연광을 많이 사용하려는 생각을 하고 촬영에 들어갔다. 하지만 하늘은 검은 구름을 머금고 있었고 바라던 자연광은 우리에게 충분한 노출을 주지 못했다. 저예산 독립영화의 미덕은 시간과 공간 그리고 날씨의 제약을 받더라도 계획했던 촬영 분을 찍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좀 더 어려운 길 재촬영을 선택했고 다음 촬영장소로 이동을 했다. 다음 장소는 야외라서 괜찮을 꺼라 생각했지만 하늘은 기어코 비를 뿌렸고, 영도다리의 첫 촬영은 우리의 계획과 너무나 다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다급해진 스텝들 그리고 감독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독립된 장면이라서 촬영을 해도 되겠다는 결론을 내렸고 우리는 영도다리의 첫 촬영을 그렇게 마무리를 했다.

2009년 2월 23일

이른 아침 숙소에서 나와 하늘부터 살폈다. 다행이 날씨는 개어있고 구름은 많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의 문제는 연기 경험이 없는 학생들을 데리고 촬영하는 것이다. 모든 촬영 준비는 되어있었고 학생들은 감독님의 지시 하에 연기를 반복적으로 연습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연습은 반나절이 흘러가고 있었고 하늘도 구름으로 뒤덮기 시작했다. 촬영을 담당하고 있는 나로서는 속이 타들어가고 있었다. 자연광에 의지해 촬영을 할 때에는 광량을 일관되게 유지하기가 힘들다. 특히 구름이 많고 바람이 부는 날씨는 구름이 빠르게 움직여 광량을 변하게 하기 때문에 더욱 힘들다.

다행이 롱 테이크를 많이 사용하시는 감독 덕분에 2회 촬영이 그렇게 촬영을 끝낼 수 있었다.

2009년 2월 24일

독립 영화를 한다는 것은 많은 노력도 필요하지만 그보다 더 많은 도움 필요하다.

오늘 촬영은 취객이 물속으로 빠지는 장면을 촬영했다. 추운 영도 앞 바다에 들어간다는 자체도 큰일이지만 기름으로 오염된 바다는 피부병을 일으켜 영도 사람들도 들어가지 않는다고 한다. 다행이 영도에 사시는 분의 도움으로 촬영은 진행되었다.

영화에 아무런 관계가 없는 분이 영화를 위해 추운 바다 속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고맙게 느끼는 것은 나뿐이 아니었을 것이다.

2009년 2월 25일

부산 자갈치 시장은 항상 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곳이다. 그 곳에서 우리는 35mm 카메라를 들고 배우를 따라가며 촬영을 했다. 카메라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지 않기 위해 최소의 크기로 세팅을 했고 최소인원으로 촬영을 했다. 하지만 막상 촬영이 시작되었을 때 시장상인들은 누구도 우리에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시장 상인들 그들의 삶에 충실하고 있었다. 이렇게 우리의 하루로 기울었다

2009년 2월 26일

좁은 길을 달리 버스 안에서 소녀가 앉아있다.

버스 밖에 비해 버스 안은 너무나 어두웠고 조명팀은 버스 안을 밝혀줄 조명기가 없었다. 우리는 햇살이 소녀에게 닿을 수 있도록 버스를 이동했고 태양을 따라 가면서 촬영을 했다.

2009년 2월 27일

병원 화장실 장면 촬영은 조금 아쉬운 부분으로 남는다. 그날 찍어야 하는 분량은 모두 소화해야하는 제작환경이라 좁은 병원 화장실에서 커다란 35mm 카메라를 들고 어렵게 촬영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좀 넓은 화장실로 옮겨서 촬영을 해도 되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2009년 2월 28일

독립영화에서 장소헌팅은 매우 중요하다. 제작비를 줄이고 편안한 촬영 환경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입양센터는 부산영상위원회 건물 1층에서 촬영을 했다. 부산시에서 운영하는 사무실이라 편하게 작업을 할 수 있었다.

2009년 3월 1일

폭력은 순환되는 것일까? 시회 폭력의 피해자인 주인공이 지신의 아이를 찾기 위해 폭력을 행하는 장면을 위해 설탕으로 만든 맥주병을 준비했다. 촬영은 여러 번의 NG로 설탕으로 만든 맥주병이 사용돼 이제 한 개만 남게 되었고 또다시 NG가 나면 진짜 맥주병을 사용해야할 지도 모를 상황이다. 다행이 마지막 컷은 OK를 부르고 진짜 맥주병은 사용되지 않았다.

2009년 3월 2일

커다란 배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녹 제거 작업을 하고 있었다. 기계에 의해 벗겨진 녹은 공기를 부유하고 있었고 작업 인부들은 조그마한 마스크에 의지한 채 고된 작업을 하고 있었다.

2009년 3월 3일

요즘 10대 소녀들의 폭력성을 표현하기위해 안이 보이는 노래방에서 촬영을 했다. 지금의 10대 소녀들의 폭력이 좁고 어두운 후미진 골목길이 아니라 사람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공간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대담해진 것일까?

2009년 3월 4일

쉬지 않고 달려온 촬영이었다. 오늘은 주인공 집 세팅이 있는 날이라 미술팀을 제외한 다른 팀들은 하루를 쉬었다.

2009년 3월 5일

주인공 인화의 집은 일본시대에 지은 집이라 구조가 조금 특이했다. 우리는 방 하나를 빌리고 그곳을 꾸미기로 했는데 방안 두면을 차지하고 있는 창문이 문제였다. 자연광을 많이 사용하는 작업에서는 너무 큰 창문이었고 커튼을 달려고 해고 가격이 너무 거대했다. 그래서 숙소 커튼을 몰래 가져다 달았다. 나름 분위기 있는 장면이 연출되었다.

2009년 3월 6일

커다란 배를 움켜지고 홀로 고통을 참는 인화의 모습이 안쓰럽다. 인화 고통이 어디에서 왔는지 왜 혼자 감수해야하는지에 대한 생각들이 생기는 촬영 있었다.

2009년 3월 7일

해질녘 영도 다리위에서 촬영을 했다. 사람들 통제 없이 카메라를 숨기고 자연스럽게 촬영을 시도했다. 몇 번의 지나가는 행인들로 인해 NG가 있었지만 순조롭게 촬영을 끝냈다.

2009년 3월 8일

국내 마지막 촬영이다. 짧지만 긴 촬영을 모든 스텝들의 열정으로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눈에 보이는 것보다는 지키고 싶은 게 많은 스텝들의 모습에 너무 감사하고 미안하다 남들보다 조금 다른 일을 한다고 소외당하는 외면당하는 일들이 많다는 것 도 안다. 문화의 다양성을 위해서라고 거대한 것을 지키는듯하지만 하지만 영화가 좋아서 하는 마음도 안다. 그런 스텝이 있어 영도다리는 끝을 맺을 수 있었다. 독립영화는 힘들다. 누구나 안다. 하지만 우리는 영화를 만든다.

2009년 3월 17일

저예산의 영화로 해외 로케를 가는 무리수를 던졌다. 최소의 인원으로 필름 카메라가 아닌 휴대하기 편한 HD카메라를 들고 프랑스로 떠나는 비행기에 올랐다. 공간의 이동이 커서 카메라의 종류가 바뀌고 화면의 질감이 변하는 것도 좋을 거라는 판단에 의해서였다.

촬영장소인 샤모니는 프랑스 남부 알프스 산맥 끝자락에 위치한 휴양도시로 프랑스뿐만아니라 세계적으로 이름난 도시다.

부산영도는 삶이 치열한 곳이다. 카메라로 영도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사람들의 삶의 노고가 보인다. 웃음 속에 스며든 주름 그리고 인사로 나누는 악수의 거친 손에서 고난이 보인다. 영도는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샤모니는 영도와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는 휴양의 도시로 사람들에게서 여유와 풍요가 느껴진다.

이곳에서 주인공 인화의 마음은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2009년 4월 1일

‘영도다리’는 지금도 치열하게 후반작업이 진행 중이다. 영화 속 삶이 치열하듯 영화도 치열하게 만들어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독립영화만 하는 나를 이상하게 생각한다.

왜? 독립영화만 하세요라는 질문이 영화에 관한 질문보다 많이 받는 질문이다.

그리고 지금도 난 ‘좋아서요.’ 라고 아주 짧게 대답한다.

-촬영감독 김성태

영도다리演員

영도다리劇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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